[온라인] 부마로드 방방 탐험 후기

2020-10-11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되었다.

이어 8월 11일 YH사건, 9월 8일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10월 4일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유신 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였으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되어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김영삼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는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 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경찰서·도청·세무서·방송국 등을 파괴하였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이에 정부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으며,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다.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 체제는 종결되었다.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5·18 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이념을 계승한 민주항쟁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2019년 9월 17일 부마민주항쟁  발생일인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마민주항쟁 [釜馬民主抗爭] (두산백과)

포털사이트에서 부마민주항쟁에 대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어수선한 1900년대 후반에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이미 주어진 민주주의를 몸소 느끼지 못하지만 그 시대에 태어났던 우리의 부모들은 '민주항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원 지는 경험을 합니다.

저는 빠른80으로 1979년생들과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우리시대의 부모님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사투하셨던 세대입니다.

부산 마산에 1979년에 살았던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했던 그 분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나라와 싸워야 했던 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한명 중에서 부모님이 결혼식날에 민주화항쟁이 심해서 신혼여행을 못 갔다는 말을 들었을때..그게 모야? 했었는데..

부끄럽지만 부마길을 전혀 몰랐던 저조차 이번에 받은 탐험 시트와  시청각 자료등으로 부마길을 알아가면서 그들의 외침소리가 우리나라에 민주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네요.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서 이동이 자유롭지 않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부마길 따라 직접탐방도 해 보고 싶습니다.

다소 어려운 주제를 아이들에게도 쉽게 접근하며..게임도하고~ 특히 주사위를 던져서 도착하는 게임을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서 굉징히 섬세하고 퀄리티있게 운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화이팅입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감사합니다.

 

 

 

 

 

 https://blog.naver.com/bbangn1/222109880085